인도네시아가 갑자기 중국산 J-10CE 전투기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제 방산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라팔 42대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F-15EX와 양해각서를 맺고, 한국과 KF-21을 공동개발하고 있던 인도네시아가 이제 중국 전투기까지 검토한다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 전투기, 실제로 들어올까?
도니 에르마완 토우판토 인도네시아 국방차관은 "중국산 J-10 전투기를 평가 중"이라며 "중국은 J-10뿐 아니라 함정, 무기, 호위함 등 다양한 무기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옵션 검토인지,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J-10CE가 갑자기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최근 흥미로운 전투 사례가 있다. 2025년 5월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 파키스탄 공군의 J-10CE가 인도 공군의 라팔 전투기를 격추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미국 관리는 "J-10이 라팔을 포함해 최소 2대의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것에 대해 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서방제 4.5세대 전투기 중 수준급으로 평가받던 라팔이 중국산 전투기에게 격추된 것으로, 예상 밖의 결과였다.
이러한 실전 성과와 함께 J-10CE는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J-10의 중국 공군용 가격은 1억9000만 위안(약 2700만 달러, 한화 약 380억원)으로서, 동급의 JAS 39 그리펜(4,000만-6,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거의 반값이다. 하지만 실제 계약 체결은 아직 없으며, 중국이 "소량 테스트 구매"에는 매우 비협조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 공군력의 현주소
현재 인도네시아 공군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질적인 전력은 미국산 F-16 30여 대와 러시아산 Su-27/30 16대에 의존하고 있지만, 장비 구성이 여러 국가에 분산되어 있어 운용과 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산 T-50i 13대는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로 활용되고 있으며, 노후화된 Hawk 200 26대는 퇴역이 임박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2022년 프랑스와 라팔 42대(81억 달러) 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내년 6대가 인도될 예정이다.
또한 2023년 8월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4.5세대급 전투기 F-15EX 24대를 구매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약 80억 달러(11조 원)라는 가격 부담 때문에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전투기 백화점의 배경 - 프라보워의 정치적 계산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전투기 다양화 전략'에는 여러 현실적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인 출신이자 수하르토 전 독재자의 사위였던 프라보워는 "전략에 대한 열정과 정치권력에 대한 열망"으로 유명하며, 터키의 군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프라보워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에게 패배한 후, 2019년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방산 정책을 주도해 왔다. 그의 전투기 도입 정책은 단순한 군사적 필요를 넘어서 복합적인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다.
첫째, 정치적 업적 쌓기다. 국방장관으로서 다양한 국가와 전투기 도입 협상을 벌이는 것은 그의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둘째, 협상 카드 확보다. 여러 옵션을 동시에 검토함으로써 각국으로부터 더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KF-21 분담금 문제에서 한국에 압박을 가하면서 동시에 다른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KF-21과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관계
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KF-21 공동개발 사업이다.
한국형 전투기 'KF-21'의 공동 개발 분담금을 기존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깎아달라는 인도네시아의 요청을 정부가 최종 수용했지만, 여전히 분담금 미납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에 해당하는 약 1조 7000억 원을 내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대부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 기술진이 KF-21 자료가 담긴 비인가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외부로 빼돌리려다가 적발돼 한국의 수사를 받게 되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토우판토 차관은 한국과 공동개발 중인 KF-21 '보라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KF-21 사업에서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선택지와 위험성
현재 인도네시아 앞에는 여러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첫째는 KF-21 중심으로 라팔을 보조로 하는 서방 동맹 기조 유지,
둘째는 J-10CE 병행 도입을 통한 비용 절감과 중국 관계 강화,
셋째는 튀르키예 KAAN 사업 참여를 통한 5세대 전투기 기술 확보,
넷째는 모든 기종을 혼합 운용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혼합 운용과 KF-21 참여 축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의 지도자로서 우리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인도네시아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비 난맥, 통합교리 붕괴, 신뢰성 상실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여러 나라의 전투기를 함께 운용하면 부품 조달, 정비, 조종사 훈련 등에서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대응 전략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인도네시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KF-21 공동개발의 국제정치적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다.
첫째, 기술 이전의 일부 유보와 분담금 미납 시 단계적 축소를 통해 압박할 수 있다.
둘째, 말레이시아, 필리핀, UAE 등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가속화해 선택권을 다양화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은 KF-21의 기술력, 한-인니 협력 방식, 그리고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선 장기 운용 효율성과 전투력, 신뢰성에 주목하면서 KF-21이 J-10C에 비해 경쟁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셋째, 'KF-21 동남아 공군 네트워크' 프레임을 강화해 인도네시아 배제 효과를 간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로 하여금 지역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하는 전략이다.
결론 : 자유로운 외교의 딜레마
인도네시아는 '전투기 다양화 전략'이라는 자유로운 외교 퍼즐을 풀고 있지만, 그 결과는 자칫 정비 난맥, 전략 혼선, 신뢰 상실이라는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비동맹 외교의 자유로움이 군사력 건설의 효율성과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상황에서 동반자의 책임과 냉철한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유연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인 양보만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상호 이익에 기반한 실용적 협력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투기 백화점은 아직 열린 채로 남아있다.
최종 선택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선택이 동남아시아 전체의 군사 균형과 방산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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