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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우크라이나 장거리 미사일 협력 : 숨겨진 군사 전략의 귀환

타잔007 2025. 5. 29. 19:31

서론 : 유럽 안보 지형의 구조적 변화

2025년 5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나 역사적인 합의를 발표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자체 개발을 지원하고, 50억 유로 규모의 새로운 군사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메르츠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자체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서방이 부과한 사거리나 목표에 대한 제한이 없는" 미사일 개발을 약속했다.

젤렌스키 , 메르츠 회담 (출처 : AP)

이는 표면적으로는 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자위권 강화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후 독일 군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메르츠 총리가 "양국 간 새로운 형태의 군사-산업 협력의 시작"이라고 표현한 이 협력은 단순한 군사기술 협력을 넘어선 지정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독일 기술 협력의 시너지와 전략적 관계

개발 중인 지상발사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최대 사거리 2,500km라는 제원을 통해 전술무기와 전략무기의 경계선상에 위치한다.

이 사거리는 키이우를 기점으로 모스크바는 물론 우랄 산맥 서쪽의 주요 러시아 도시들과 심지어 이란 북부까지 타격권에 포함시키는 범위다.

이 미사일 개발에는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기술적 기반이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시절부터 축적된 항공·미사일 기술의 DNA를 보유하고 있다. 유즈노예(Южное) 설계국 출신 기술자들과 구소련 시절 ICBM(SS-18 Satan) 설계·제작에 참여했던 핵심 인력, 그리고 자체 항공기 제조 경험(안토노프 An-124, An-225)이 이러한 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전장에서 드론, FPV, 자작 유도무기를 통한 실전 피드백이 현장 테스트부터 보완, 개량 사이클을 매우 빠르게 만들고 있다. 순항미사일의 실험적 개조 활용 능력도 확인되었으며, 전쟁 중에도 소규모 단위의 무기생산·조립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독일은 유럽 최고의 미사일 부품과 무진장 창고 역할을 담당한다. Diehl, MBDA Germany, Hensoldt 등 독일 방산업체들이 보유한 유럽 내 IRIS-T, Taurus KEPD-350, Eurofighter 무장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성항법/레이저 유도/GPS 보정 기술을 우위에 두고 있다. 특히 MTU Aero Engines와 롤스로이스 독일 법인이 보유한 고신뢰성 소형 터보팬 엔진 공급이 가능하여, 저공비행 순항미사일용 엔진 기술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NATO 공용/표준 부품(센서, 통신모듈, 발사체 제어부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장거리 미사일에서 중요한 전자전 대응력과 RCS 저감 설계 능력도 갖추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이 미사일은 GPS와 관성항법을 결합한 정밀유도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독일의 핵심 방산업체들이 제공하는 터보팬 엔진과 핵심 부품들을 통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범유럽 미사일 제조업체 MBDA의 독일 지부(MBDA Deutschland)가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며, 타우러스(KEPD 350) 미사일에 사용된 고출력 터보팬 엔진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일의 MTU(현 롤스로이스 파워시스템즈 산하)가 보유한 고성능 엔진 기술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2,500km라는 사거리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NATO와 국제사회의 중거리탄도미사일 금지 레드라인을 교묘히 회피하면서도 전략적 억제효과를 극대화하는 '계산된 거리'다.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무기체계는 단순한 방어용 억제무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 심장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은 전통적인 지역분쟁의 성격을 전략적 대결 구도로 격상시킨다. 더 나아가 중동 지역까지 포함하는 타격반경은 유럽-중동 안보 연계라는 새로운 전략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독일의 군사정책 전환 : 금기의 우회적 돌파

독일의 이번 결정은 전후 70여 년간 유지해온 군사적 자제 정책의 근본적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공격형 무기 개발과 장거리 타격능력 보유를 사실상 금기시해왔다. 비록 INF 조약의 직접 당사국은 아니었지만, NATO 체제 내에서 중거리 이상의 타격무기는 정치적으로 터부였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은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논리를 통해 이러한 금기를 우회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1920년대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소련과 비밀리에 카잔에서 전차를 개발했던 사례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제3국을 통한 우회적 군사력 건설이라는 전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독일에게 가져다준 전략적 각성이 있다. 메르켈 시대의 "러시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평화 달성" 정책은 완전히 파산했다. 노르드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통한 에너지 의존, 경제 협력을 통한 러시아 변화 기대, 군축을 통한 안보라는 메르켈식 실용주의는 푸틴의 침공으로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메르켈이 추진했던 "러시아를 서구 질서로 끌어들이기" 전략은 오히려 독일을 전략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르츠 정부는 이제 메르켈 시대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전쟁 전 55%에서 현재 10% 이하로 급격히 감소했다. LNG 터미널 구축과 노르웨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다각화를 통해 러시아 에너지 의존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 상태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 변화를 넘어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군사적 억제력을 통한 안보 확보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는데, 이는 단순한 정책 수정이 아니라 독일 외교안보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힘을 통한 평화'라는 전통적 안보 개념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경험과 전략적 정체성

우크라이나가 독일과의 군사협력에 주저함이 없는 이유는 복잡한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동유럽 국가가 아니라 서구 문명과 러시아 문명이 충돌하는 경계지대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1932-33년 홀로도모르 대기근으로 4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집단적 기억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각인시켰다.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 초기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했던 것, 그리고 SS 갈리치아 사단 등에서 독일 편에 서서 싸웠던 역사적 사실은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보여준다.

물론 독일 역시 이후 점령자로 변모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압제는 더욱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악몽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독일을 상대적으로 덜 경계하는 심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현황

비교 관점에서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현무-3 시리즈(500-1,500km)를 거쳐 현무-5(추정 사거리 3,000km 이상)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실전 배치한 상태다. 이는 미국의 기술 의존 없이 이룬 성과로, 북한은 물론 중국 동부와 러시아 연해주까지 포함하는 억제력을 구축했다.

탄도미사일 사거리 (출처 :동아일보)

한국이 우크라이나의 애매한 2,500km보다 더 긴 사거리를 추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지정학적 환경에서는 중국 베이징까지의 거리(약 950km),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거리(약 750km)를 넘어 중국 동부 연안의 주요 군사기지와 경제중심지까지 포괄하는 억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동풍(DF) 시리즈 탄도미사일과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등 한반도를 겨냥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호확증파괴(MAD) 개념에 준하는 보복능력 확보가 전략적으로 필수적이다.

한국은 핵무기 없이도 장거리 정밀타격 전력을 통해 전략적 억제력을 확보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삼각 관계의 미래 전망

우크라이나-독일-러시아 삼각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의 군수기술을 통해 러시아를 억제하는 전략적 자립국가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히 분쟁 당사국에서 지역 강국으로의 위상 변화를 의미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인식될 것이다. 독일의 군사적 복귀와 우크라이나의 전략무기 보유라는 이중 충격은 러시아로 하여금 더욱 공세적인 대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외교적 압박을 넘어 사이버 공격이나 비대칭 위협으로 확산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외피를 통해 자국의 군사력 확대를 정당화하면서, 향후 유럽 최대의 군수산업 강국으로 부상할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메르켈 시대의 경제 중심주의와 실용적 외교에서 벗어나 '힘의 외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결국 이 삼각 구도는 전쟁의 직접적 피해는 우크라이나가, 군비확장의 혜택은 독일이, 그리고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응 부담은 러시아가 각각 감당하는 비대칭적 구조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부담 분산은 향후 유럽 안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