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태국 여행을 자주 다니며 이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에 매료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복잡한 정치적 현실이 이 아름다운 나라를 끊임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와의 비공식 통화에서 자국 군부를 비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태국 정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국의 쿠데타 역사, 캄보디아와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군부가 여전히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 통화 유출 사건의 전말
국경 충돌이 모든 것의 시작
2025년 5월 28일, 태국-캄보디아 국경의 장충(Chong Bok) 지역에서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양국 군대가 약 10분간 교전을 벌인 끝에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하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양국은 서로 상대가 먼저 적대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떠넘겼고, 국경 지역의 긴장은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 중순,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는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현 상원의장)와 비공식 전화 통화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통화 내용이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태국 정계에 예상치 못한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충격적인 통화 내용 공개
문제가 된 것은 패통탄 총리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통화에서 훈센을 '삼촌'이라 부르며 친밀감을 드러냈고, 더욱 충격적 이게도 태국군 제2사령관 분씬 팟깡을 '반대편' 또는 '상대'라고 언급하며 자국 군부를 비판했습니다.
외국 지도자와의 통화에서 자국 군 지휘관을 비난한 것은 태국 정치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치적 폭풍의 시작
통화가 유출되자마자 태국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보수 연립 파트너였던 부므짜이타이당이 즉각 연정 탈퇴를 선언했고, "총리의 행동이 국가와 군의 존엄을 훼손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패통탄 총리는 급히 군 수뇌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이미 정치적 타격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훈센의 계산된 유출
흥미롭게도 이 통화는 캄보디아 측에서 의도적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훈센은 '투명성을 위해' 자신이 통화를 녹음했고, 정부 관계자 80여 명에게 내용을 공유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38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한 노회한 정치인 훈센의 유출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 태국 내 정치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패통탄 총리가 약화되면 군부나 보수파가 부상하게 되고, 이는 캄보디아에게 국경 문제나 자원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 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동기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패통탄 총리의 치명적 실책
한편, 패통탄 총리가 통화 내용 유출 가능성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총리는 부친 탁신과 훈센 간의 오래된 친분을 지나치게 신뢰했고, 이번 통화를 안전한 '막후 친분 외교'의 연장선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훈센이 은퇴 후에도 SNS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과 과거에도 민감한 내용을 공개한 전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중대한 외교적 실책이었습니다.
분씬 팟깡 사령관의 강경 노선
패통탄 총리가 '상대편'이라고 지목한 분씬 팟깡 2군 사령관은 캄보디아 국경 지역을 관할하는 군 조직의 수장으로, 군부 내에서도 보수·국수주의 성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사령관이 정부의 외교적 해결 방침과는 별개로 캄보디아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캄보디아 측의 국경 인근 도로 확장, 군초소 보강 등을 영토 침범 가능성으로 간주하며 강경 대응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군부의 자율적 권력을 과시하고, '군부 없으면 국경도 못 지킨다'는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분석됩니다.
실제로 5월 28일 국경 충돌 이후에도 태국군은 국경 검문소 여러 곳을 폐쇄하거나 엄격히 통제하는 조치를 지속했고, 캄보디아는 태국산 농산물 금수와 전기·연료 수입 중단으로 보복했습니다.
2.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백년의 갈등
태국과 캄보디아의 긴장은 단순한 최근 사건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100년 넘는 영토 분쟁에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측량 오류
문제는 1904년 프랑스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화하면서 태국과 캄보디아의 영토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크메르 제국 시대에 건설된 힌두교 사원인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로 잘못 편입된 것입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태국(당시 시암)이 이 오류를 1930년대에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50년 가까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54년 캄보디아가 독립하자 태국은 뒤늦게 사원 지역에 국경수비대를 배치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 판결과 지속되는 갈등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태국이 '착오를 인지하고도 오랜 기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캄보디아의 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국제법상 '금반언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태국의 권리 포기로 간주된 것입니다.
2013년에는 이 판결이 재확인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갈등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는 1962년 판결을 근거로 사원 주변 지역 전체를 자국령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태국은 사원의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약 4.6㎢에 달하는 주변 부지는 여전히 자국령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 '국경미획정지역'이 양국 간 지속적인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2008년 유네스코 등재와 갈등 재점화
2008년 캄보디아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단독 등재하면서 분쟁이 다시 격화됐습니다.
태국은 공동 등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양국 간 무력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교전으로 수십 명이 사상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보면, 현재의 국경 갈등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양국 모두 국경 문제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어, 완전한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3. 태국 군부정치의 뿌리 깊은 역사
이번 통화 파문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태국에서 군부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때문입니다.
태국 군부는 단순한 국방 조직이 아닌,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 내 국가'입니다.
세계 최다 쿠데타 기록의 나라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수립 이래 19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해 12번이 성공한, 세계에서 가장 쿠데타가 빈발한 국가입니다.
현재까지 17번의 헌법 개정이 이뤄졌는데, 이는 쿠데타 성공 시마다 군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헌법을 뜯어고쳤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2006년과 2014년 두 차례나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2006년에는 탁신 친나왓이, 2014년에는 그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각각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습니다.
2014년 쁘라윳 짠오차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9년간 총리직을 유지한 것은 기억에 새로운 일입니다.
왕실과의 특수한 공생관계
태국 쿠데타의 독특한 특징은 왕실과의 관계입니다.
1932년 이후 왕은 쿠데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왕이 동의하지 않는 쿠데타는 무조건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는 군부가 왕실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왕실의 승인 하에 정권을 장악하는 특수한 형태의 쿠데타임을 보여줍니다.
군부는 스스로를 '왕실과 국가의 수호자'로 포장하며 정당성을 확보해 왔습니다.
쿠데타 발생 시마다 방송에 등장하는 성명문에는 항상 국왕과 왕비의 어진이 놓여 있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푸미폰 국왕 재위 기간 중 15회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승인하지 않은 것은 6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2017년 헌법 : 군부 독재의 완전한 제도화
201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군부의 정치 개입을 사실상 완전히 제도화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조항은 상원 250석 전원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군부의 지지 없이는 총리 선출이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총리가 되려면 하원 500명과 상원 250명을 합친 750명의 과반인 376명의 지지가 필요한데, 상원을 장악한 군부가 거부하면 하원에서만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반대로 군부는 하원에서 126석만 확보하면 됩니다. 이는 사실상 군부에게 거부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어 행정부를 과도하게 견제할 수 있게 된 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 정책이 국가에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경고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습니다.
개혁 세력에 대한 체계적 탄압
2024년에도 군부와 보수 세력의 개혁 탄압은 계속됐습니다.
2023년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개혁 정당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은 왕실모독법 개혁과 군부 권한 축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당 지도부는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세타 타위신 전 총리 역시 '부패 인사 장관 임명'을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임됐습니다.
이는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들이 제기한 탄핵안에 따른 것으로, 직접적인 쿠데타 없이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집권 여당이 '쿠데타 방지법' 제정에 나섰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태국 국립개발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2%가 쿠데타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고, 77.5%는 쿠데타 방지법이 실제로 쿠데타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4. 현재 상황과 향후 전망
즉각적 실각 가능성은 낮지만 장기적 타격은 심각
이번 통화 파문에도 불구하고 패통탄 총리가 즉각 실각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태국 군부는 당장 정권 붕괴보다는 총리를 약화시켜 관리 가능한 상태로 두는 것을 선호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당장 총리가 퇴진하면 혼란이 가중되고 군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부 연정 파트너가 이탈했지만 핵심 연립 세력들은 여전히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당장 정부가 붕괴될 상황은 아닙니다.
셋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기에는 국제적 정당성이 부족합니다. 이번 사건이 군부와의 긴장은 보여줬지만 국가적 위기의 결정적 증거까지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군부와 보수 세력의 지속적 압박, 연정 내부의 균열, 정책 추진 동력 상실 등으로 '허약한 총리'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될 위험이 큽니다. 다음 위기 발생 시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신나왓 가문 vs 보수·군부 구도의 재현
이번 위기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태국 정치의 근본적 대립 구도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패통탄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의 딸이자, 2014년 쿠데타로 실각한 잉락 친나왓의 조카입니다.
신나왓 가문은 농민과 도시 서민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는 늘 승리했지만, 군부와 보수 세력의 견제로 안정적인 집권에는 실패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탁신 전 총리가 2023년 15년 만에 귀국한 것도 군부와의 일종의 '거래'를 통해서였고, 이번 사건은 그런 미묘한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장기적 변화 동력과 구조적 제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은 감지됩니다.
2023년 총선에서 개혁 정당인 전진당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젊은 세대의 변화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줍니다. 도시화 진전, SNS를 통한 정치 참여 확대, 교육 수준 향상 등은 모두 군부 권력을 서서히 잠식해갈 요인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실제 정치 개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군부와 보수 세력은 헌법재판소, 선관위 등 각종 기관을 통해 개혁 세력을 지속적으로 견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헌법 자체가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근본적인 변화는 더욱 요원해 보입니다.
맺음말 : 구조적 모순의 지속
태국 정치의 위기는 패통탄 총리와 훈센의 통화 한 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90년 넘게 지속되어온 구조적 모순의 표출입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가 군부와 왕실, 보수 기득권의 견제로 안정적인 통치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쿠데타, 정당 해산, 총리 해임이 일상화된 정치 현실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해 보입니다.
훈센과의 통화 파문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진짜 싸움은 태국 사회의 깊은 곳에서, 변화를 원하는 세력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 사이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애정하는 관광지인 태국이 이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지, 2025년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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