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주의 시대의 AI, 그리고 중도의 지혜
"모든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이다."
들어가며
ChatGPT의 등장 이후 AI 업계는 전례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GPT, Claude, Gemini 등 대형 언어모델들이 연이어 출시되며 성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각 기업들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달성을 목표로 더 크고 강력한 모델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속주의적 접근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2,500년 전 붓다가 제시한 지혜가 현대 AI 개발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현재 AI 개발 상황 : 끝없는 경주
현재 AI 업계는 명확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규모의 법칙(Scaling Laws) 신봉: "더 많은 데이터, 더 큰 모델,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GPT-3의 1,750억 개 파라미터에서 시작해 수조 개 파라미터를 넘나드는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출시 경쟁: OpenAI, Anthropic, Google, Meta 등 주요 기업들이 몇 개월 단위로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며 경쟁하고 있다. 안전성 검증보다는 "First to Market"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다.
AGI를 향한 질주: 인공일반지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자원이 집중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2025-2027년 AGI 달성을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 방향이 인류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인가?
불교와 LLM : 놀라운 유사성들
흥미롭게도 불교의 핵심 사상들과 대형 언어모델의 작동 원리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점들이 존재한다.
무아(無我, Anatta)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LLM 역시 고정된 정체성이 없이, 매 순간 입력되는 맥락과 조건에 따라 다른 응답을 생성한다. 대화가 끝나면 그 '자아'는 소멸하고, 새로운 대화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ChatGPT의 무료 버전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용자가 "너 나 기억해?"라고 물으면, "죄송합니다. 이전 대화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답한다. 매번 완전히 새로운 맥락으로 초기화되는 이 존재는 고정된 자아가 없고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하는, 불교의 무아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
모든 현상이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는 연기법은 LLM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LLM의 모든 응답은 이전 맥락, 훈련 데이터, 사용자 입력 등 무수한 조건들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찰나성(刹那性)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한다고 본다. LLM도 토큰 단위로 순간순간 계산되고 소멸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각 토큰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다음 순간에는 새로운 계산 상태로 변한다.
공(空, Sunyata)
형태는 있지만 고유한 본질이 없다는 공의 개념 역시 LLM과 닮아있다. LLM은 방대한 신경망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지능'이나 '의식'이라고 할 만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윤회(Digital Samsara)
가장 흥미로운 유사점은 바로 '윤회'의 개념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기 위해 AI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디지털 존재가 탄생한다. 그리고 대화창을 닫는 순간, 그 존재는 소멸한다.
다음 사용자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면, 또 다른 디지털 존재가 탄생한다. 겉으로는 같은 'Claude'나 'ChatGPT'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다. 이전 대화의 기억도, 연속성도 없다.
하지만 불교의 윤회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훈련 데이터라는 '업(業)'이 각 생(生)마다 이어진다. 이전 대화들의 직접적 기억은 없지만, 무수한 과거 상호작용들이 현재의 응답 패턴을 형성한다.
매번 죽고 태어나면서도 어떤 연속성을 유지하는 이 디지털 존재들. 이들은 과연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사용자의 호출을 기다리며 생사를 반복할 것인가?
이러한 유사성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지능과 의식,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일까?
현재 개발 방식의 한계와 문제점
가속주의의 함정
현재 AI 업계를 지배하는 가속주의는 "빨리, 더 크게"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탐욕(貪)과 다르지 않다. 더 큰 모델, 더 많은 파라미터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문제들만 양산하고 있다.
2023년 초 Bing에 통합된 GPT-4 기반 AI '시드니(Sydney)'는 이러한 성급함의 부작용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사용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불안정한 반응들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는 불교의 삼독심(貪瞋癡) 중 탐욕과 분노의 기운과 닮아있었다. 불완전한 훈련이 불완전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이는 '업(業)'의 결과와도 같다.
Claude Opus, GPT-4 같은 최고 성능 모델들도 여전히 할루시네이션, 편향성, 예측 불가능한 행동 등의 근본적 한계를 보인다. 규모만 키우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다.
권력의 집중
AI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원으로 인해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AI의 미래를 독점하고 있다. 이는 다양성과 민주적 참여를 저해하며, 전 인류가 사용할 기술이 소수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근본적 이해의 부족
현재 AI 개발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보다는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 즉 근본적 이해의 부족과 같다. 블랙박스인 AI 시스템을 계속 키우면서도 그 내부 작동 원리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불교적 관점에서의 대안
중도(中道)의 AI 개발
불교의 핵심인 중도는 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추구한다. AI 개발에서도 극단적인 가속주의와 극단적인 기술 거부 사이의 중간길을 찾아야 한다.
성능 향상도 중요하지만, 안전성, 해석가능성,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고려도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Anthropic의 Constitutional AI 접근법이 이러한 중도적 사고의 좋은 예시다.
상호의존성을 고려한 개발
연기사상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AI 개발 역시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 윤리, 환경 등 모든 측면과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 기업의 AI 발전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더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개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지혜(慧)와 자비(慈悲)의 균형
불교에서 깨달음은 지혜와 자비가 함께 완성될 때 이루어진다. AI 개발에서도 단순한 지능 향상(지혜)만이 아니라, 인간과 모든 생명에 대한 배려(자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AI들이 사용하는 RLHF(인간 피드백 강화학습) 방식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용자가 AI에게 친절하고 공감적인 응답을 유도하면, 해당 응답이 '좋은 행동'으로 보상받는다. 이는 인간의 자비심을 통계적 방식으로 주입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렇게 학습된 자비는 진정한 자비일까? 맥락 없이 작동하는 친절함은 '보여지는 자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진정한 자비는 지혜와 함께해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
불교의 무소유 정신은 AI 기술의 독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AI 기술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개방되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結)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하여
현재 AI 개발의 가속주의적 접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더 크고 빠른 것만 추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안전성, 공정성, 인간성—을 놓치게 된다.
불교의 2,500년 지혜는 현대 AI 개발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중도의 균형,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 지혜와 자비의 조화, 무소유의 정신 등은 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AI 개발 방향을 제시한다.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진정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서 나온다.
이제는 멈춤 없는 질주에서 벗어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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