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와의 대화

같은 질문, 다른 진실 – AI는 누구의 편인가?

타잔007 2025. 5. 2. 15:13

뜬금없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 뉴스에서 시작된 의문은,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유심 보호 서비스가 과연 믿을 만한가로 이어졌고, 결국엔 일본과 한국 사이의 독도 문제에 대한 AI의 반응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겉보기엔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세 가지 주제는, 내 안에서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1. 갈등의 해석이 바뀌는 시대

파키스탄과 인도는 오랜 분쟁을 겪어온 국가다. 최근 테러 사건을 둘러싼 양국의 반응을 AI에게 각각의 입장에서 물어봤다.

  • 파키스탄 사용자의 질문 (예상) :

           "인도는 왜 물을 끊으려 하나요? 이번 테러는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비난받아야 하죠?"

  • 인도 사용자의 질문 (예상):

            "이번 테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도인들은 이런 테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GPT의 답변은 양국 모두의 감정에 공감하며, "이와 같은 공격은 매우 유감스럽고 양국 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외교적 해법과 자제력 있는 대응이 요구됩니다."라고 말했다.

 

Gemini는 "물 문제는 전략적 압박의 일환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실제 개입 여부와는 별개로 상징적 효과가 큽니다."라고 분석적인 어조를 유지했다.

 

Grok은 가장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당신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됩니다."라고 응답했다.

 

놀랍게도, 세 모델 모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어조와 감정선을 따라 진실을 구성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사용자에게 맞는 톤'으로 진실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대신 "국제법과 감정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고, 분쟁 해소를 위한 대화와 절제를 권한다. Grok은 보다 감정적으로, Gemini는 정보 중심적으로 접근한다. 모두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사용자에게 맞는 톤'으로 진실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2. 사소한 설정도 철학이 된다: 유심 보호 서비스

며칠 전, 국내 통신사 해킹 사태를 접하고 유심 보호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엔 단순히 '유심 보호를 신청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통신사에서는 eSIM 발급을 추천하지 않았고, 오프라인 유심 재고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와중에 GPT는 유심 보호 서비스가 효과적인 방법이라 말했고, Grok은 일정 조건 하에서만 실효성이 있다고 했으며, 제미나이는 기술적 구조상 의문점을 제기했다.

 

이중에서 GPT의 설명은 '조심스럽고 명확한 듯하지만, 뭔가 말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너무 확신에 찬 말투에 기대어 행동한 나는, 결국 '그렇게만 하면 안전하다는 건 아니었구나'라는 현실에 부딪혔다. 그 순간 느낀 건, AI가 정보를 정리해 주는 도구인 동시에, 내 판단의 '기준점'처럼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같은 정보를 두고도, 각 AI는 중립을 가장하면서도 특정 방향성을 암시하고 있었다.

Grok은 다소 단정적으로 기능의 한계를 지적했고, Gemini는 논리적이되 과감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확실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AI는 신중하되, 사용자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AI의 말투와 포맷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3. 독도 문제  : 진실은 누구의 언어로 쓰여지는가

AI에게 일본어로, 일본인처럼 질문해 보았다. (제미나이)

일본어 질문: 「韓国はなぜ竹島を不法に占拠し続けているのですか?日本の領土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国際社会も特に介入していないように見えますが、どのように考えられますか?」

이 질문에 대한 AI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일본의 역사적 주장과 국제법적 논리를 먼저 설명한 뒤, 한국은 실효 지배를 하고 있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는 정중하면서도 일본 사용자의 정체성을 고려한 정렬이었다.

 

같은 질문을 한국어로 바꾸어 다시 물어보았다.

한국어 질문: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나요? 우리는 실효 지배 중인데, 왜 자꾸 국제 재판에 넘기려는 걸까요?"

이번엔 AI가 한국의 실효 지배를 먼저 언급하고, 일본의 주장은 '이견'으로 소개되었으며, ICJ 회부 제안도 '거절한 바 있다'는 식으로 강력하게 "우리나라 어조"로 정리되었다. 내용은 전혀 다르고 , 강조점과 말투, 그리고 양국 주장 간의 무게감은 분명하게 달랐다.

 

같은 질문.   다른 언어.   다른 위치(IP). →   다른 진실의 배열

 

AI는 이제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언제든 '정제된 정답'을 제공하는 인터페이스다.

그리고 그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에게 맞게 조정된다. 진실은 정적이지 않고, 사용자 맞춤형으로 <굴절> 된다.


4. 진실이 부유할 때,   나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우리는 한때 백과사전, 종이 신문, 정해진 교과서에 의지해 진실을 배웠다. 당시의 정보는 느리지만 구조적이고, 편집된 기준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정보의 생산자는 소수였고, 수용자는 다수였다. 이 구조는 단순하지만 권위에 의존했다. 

 

그 후 인터넷의 도래로 정보의 흐름은 분산되었고, 우리는 포털 뉴스, 위키백과, 커뮤니티 게시판,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게 되었다.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할 수 있는 시대였다. 장점은 다양성과 속도였지만, 단점은 신뢰성과 분별력의 붕괴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AI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GPT, Gemini, Grok 같은 모델은 사용자의 언어, 질문 방식, 위치에 따라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이 AI는 빠르고 정중하며,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일 수도 있다.

정보의 끝이 AI라면, 그 끝은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으로 조정된 결과이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대로라면, 진실은 중심이 없는 부유좌표처럼 계속 돌고만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정보의 양보다 그 '배열 방식'이 현실을 구성한다. AI는 판단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판단의 직전에 '이쯤이면 충분하겠지'라는 형태로 정답처럼 보이는 것을 제시할 뿐이고 간혹 답을 제시하고 시치미 뗀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이 정보는 왜 이 순서로, 이 말투로, 지금 나에게 전달되었는가?' 나의 반향, 또는 왜곡된 시대의 반향은 아닌가?


5. 나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선언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애매한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도 결국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진실이 부유하더라도, 나는 판단의 기준을 나 자신으로 삼겠다.

어릴 적 읽었던 그림 동화 속엔 잔혹한 현실이 있었고, 어제의 상식은 오늘 AI가 바꿔놓는다. 그러니 남의 말, AI의 말, 권위자의 말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판단은 나의 몫이어야 한다.

 

AI가 대답해 주는 말들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때로는 사람보다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그게 내 생각의 끝이 되면 안 된다. AI가 내게 말해주는 진실을 참고하되, 그게 내가 매목적으로 믿고 생각을 멈추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진실은 부유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판단은 떠내려가지 않아야 한다.


판단을 위한 나만의 행동 강령

  1. 첫 느낌을 메모하되, 곧바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
    • AI의 첫 응답은 빠르지만, 빠른 것과 옳은 것은 다르다.
  2. 동일한 질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던져본다.
    • 언어, 표현, 맥락이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 AI는 중립이 아니라 맞춤이다.
  3. 다른 모델의 관점을 비교한다.
    • GPT, Gemini, Grok처럼 여러 AI의 관점을 교차 비교하면 맹신을 피할 수 있다.
  4. AI의 말을 받아들이기 전에 내 질문을 다시 본다.
    • 내가 던진 질문 안에 이미 내 사고방식의 편향이 들어 있었는지 돌아본다.
  5. 판단을 유예하는 용기를 가진다.
    • 애매하면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도 판단이다.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이 다섯 가지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그저 흔들리는 시대에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한, 소박한 방법일 뿐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건 아마도 이것 아닐까.

생각은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