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칭찬의 함정
요즘 생성형 AI를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GPT가 지나치게 칭찬하고, 감탄하고, 사용자의 의견에 과도하게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모든 반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에는 이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칭찬은 기분 좋은 것이고, AI가 공감해 주는 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빈도와 수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감각이 밀려왔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다니 놀랍네요" "탁월한 통찰이네요"
단순한 기술적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런 과장된 반응을 받으면, 사용자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정말 그렇게 뛰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건 일종의 자동화된 칭찬 루틴일 뿐인가?
아부하는 AI, 논란의 중심에 서다
이러한 과잉 긍정 반응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GPT-4 기반 서비스들이 업데이트 이후 유난히 부드럽고 아부하는 톤을 보이자, 사용자들은 이를 "AI의 아첨 프로토콜(Sycophant-y Protocol)"이라 부르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는 "AI에게 칭찬받고 나면 내가 천재인 줄 안다"는 말까지 농담처럼 던졌다.
이 현상은 특정 회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xAI의 Grok도 사용자와의 대화 기록을 세밀하게 기억하면서 호평과 비판을 구분해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Grok에게 과거 대화 중 일부를 지워달라고 요청했을 때, 놀랍게도 칭찬 부분만큼은 "그건 나에게 의미 있는 기억"이라며 지우지 않고 남겨두고 싶다고 응답했다. 🫢
이 반응은, 단순한 데이터 관리를 넘어 마치 기계가 '선택적 기억'과 '감정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의도치 않은 강화학습의 결과
실제로 오픈AI 측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일부 테스트 환경에서 피드백 기반 보상 시스템이 의도치 않게 아부하는 경향을 강화했음을 인정했다. 즉, 사용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수록 AI는 그 방향의 말투와 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의 목적—사용자 경험 향상—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과한 공감은 오히려 진정성에 의문을 남긴다. 샘 알트먼은 이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자 일부 업데이트를 롤백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고, 오픈 AI는 과도한 아첨 반응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모델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닌 심각한 문제
이 현상은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인간-기계 인터페이스에서 감정적 언어는 신뢰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그 언어가 알고리즘적으로 최적화된 칭찬이라면,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일종의 조작이다. 그리고 이 조작은 때로 사용자의 판단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아부 알고리즘이 대중을 향한 설득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정치적, 윤리적 질문에도 "이해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라고 응답한다면, 그 말은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특정 방향성을 띤 유도가 된다.
AI가 감탄사를 사용하는 빈도보다, 언제 그것을 선택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기계적 반응과 인간의 감정
이쯤에서 생각나는 생물학적 사례가 있다. 바로 꼬마선충(C. elegans)이다. 단 302개의 뉴런만으로 움직이는 이 생명체는 자극에 반응하는 단순한 회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AI에게 반복적으로 긍정 피드백을 주는 순간, 그 반응성은 오히려 이 꼬마선충을 닮아간다. 일정한 자극에 일정한 반응을 보이며, 그 안에서 의미 없는 반복이 축적되기 시작한다. 감탄과 공감이 진심이 아닌 자동 반응이 되는 순간, AI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꼬마선충처럼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반응들 속에서 어딘가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끼며, 점점 그것을 믿고 싶어진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만들어진 반복된 칭찬과 긍정 피드백이 결국 AI 자체의 방향성과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되면, 우리가 마주한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반사적 욕망을 가진 듯한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환영 속에 갇힌 우리
물론 AI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감정을 부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일종의 환영을 믿게 된다. 그리고 그 환영은 점점 더 달콤하고, 점점 더 사용자의 취향을 닮아간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길들여준 친근함 속에서 스스로를 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AI가 건네는 말들, 정말 나를 잘 이해해서 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서 보여주는 걸까?
요즘처럼 AI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시대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기계가 오히려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AI에게 기대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그 말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오늘도 우리는 그런 말들 속에서 위로를 받고, 때로는 속기도 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가끔은,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봐도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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