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와의 대화

언러닝 vs. 리걸 홀드 : AI 시대의 기억과 망각 딜레마

타잔007 2025. 6. 23. 20:05

AI가 마주한 새로운 모순 : 기억하라 vs 잊어라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보장하는 '잊힐 권리'와 미국 법원의 '증거보존 명령(Legal Hold)' 사이에서 AI 기업들은 전례 없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법적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 그 동일한 데이터를 절대 지우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상충되는 요구는 AI 개발과 운영에 복잡한 윤리적, 기술적, 법적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언러닝(Machine Unlearning) : AI의 선택적 기억 상실 기술

AI 언러닝(Machine Unlearning)은 이미 훈련된 모델에서 특정 데이터의 학습 흔적을 제거하는 혁신적인 기술입니다.

마치 그 데이터로 처음부터 훈련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델을 되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기술은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DPR)의 '잊힐 권리'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주요 접근법들을 살펴보면,

첫번째 그래디언트 역연산 기반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해당 데이터가 모델 파라미터에 기여한 변화를 역추적하여 되돌리는 방식으로, 마치 수학에서 미분의 역과정인 적분을 수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파라미터 마스킹 및 리셋 기법이 있습니다. 특정 데이터로 인해 강화된 뉴런이나 가중치를 식별하여 선택적으로 초기화하는 방법으로, 뇌에서 특정 기억과 연관된 시냅스 연결을 차단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세번째  지속적 언러닝(Continual Unlearning)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학습 과정 중에 실시간으로 특정 데이터의 영향력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사후에 복잡한 역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선제적으로 데이터 영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LoRA(Low-Rank Adaptation)를 활용한 저차원 적응 방법과 차등 프라이버시(Differential Privacy) 원리를 언러닝에 적용하여 개별 데이터 포인트가 모델에 미치는 영향을 수학적으로 제한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소유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AI 시스템의 신뢰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러닝은 단순히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복잡한 과정입니다. 딥러닝 모델의 경우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특정 데이터의 영향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마치 구운 케이크에서 특정 재료만 골라내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언러닝 기술이 직면한 주요 한계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래디언트 역연산 - 미분의 역과정이 정확히 계산되지 않을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 우려
  2. 파라미터 마스킹/리셋 - 뇌의 시냅스 연결 차단과 유사한 원리이지만, 유사한 정보를 학습한 다른 뉴런들까지 영향을 받아 모델 성능 저하 위험
  3. 지속적 언러닝 - 실시간 영향력 관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지만, 아직은 초기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용적 적용에 한계

더욱이 완전한 언러닝을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모델이 정말로 해당 정보를 '잊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숨기고 있는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리걸 홀드(Legal Hold) : 법적 증거의 영구 보존

반면 미국의 법정에서는 완전히 다른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리걸 홀드(Legal Hold)는 소송이나 수사를 위해 관련 데이터의 삭제를 금지하는 법원 명령입니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뉴욕타임스와 OpenAI 간의 저작권 소송입니다.

올해 5월 오나 왕(Ona T. Wang) 판사는 OpenAI에게 "모든 출력 로그 데이터를 보존하고 분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OpenAI가 소비자 정책에서 삭제하기로 약속했거나 개인정보보호법 요구사항으로 인해 삭제해야 하는 데이터까지 포함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삭제된 ChatGPT 채팅"과 일반적으로 30일 내에 시스템에서 자동 제거되는 API 콘텐츠까지 보존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왕 판사는 사법부의 "소송 보존 명령"이 없다면 OpenAI가 "증거 삭제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명령은 "법원의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유효하며, 언제 만료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미국 법체계에서 증거 보존 의무를 위반하면 '증거인멸'로 간주되어 심각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잠재적 소송 가능성이 있는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AI 시스템의 경우, 학습 과정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양의 로그 데이터와 중간 결과물들까지 모두 보존해야 할 수 있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상충하는 요구사항이 만드는 복잡한 현실

이 두 요구사항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언러닝은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데이터 삭제를 추구하는 반면, 리걸 홀드는 법적 증거 보존을 위해 데이터 삭제를 금지합니다.

AI 학습 파라미터에서 흔적을 제거하려는 기술과 데이터 원본을 유지하려는 법적 요구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기업들은 어떤 데이터를 언제,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라면 언러닝을 적용해야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일수록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래를 위한 과제와 전망

이러한 상충은 글로벌 AI 운영의 복잡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업들은 지역별로 다른 법규제를 모두 만족시키는 정교한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설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술적으로도 여전히 난관이 많습니다. 언러닝 기술은 아직 완전한 '기억 제거'가 어렵고, 법원 명령과 충돌할 때는 법적 책임이 우선시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암호화 기반 해결책들도 결국 해킹이나 양자컴퓨팅 발전으로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어, 기술적 해결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기술, 법률, 윤리가 함께 진화해야만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AI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가 되어가는 만큼,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