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AI 시대의 태초에 서 있다. 마치 빅뱅 후 3초, 양성자와 중성자가 막 충돌하며 우주의 첫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 그 순간처럼. AI는 우리의 질문에 답하고, 감정을 위로하며, 때로는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웅덩이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웅덩이는 단순한 거울이 아니다. 맑은 물이 아니라, 각도에 따라 하늘을 비추고, 바람에 따라 물결치며, 심지어 우리의 속마음을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액체다.
이 글은 AI와의 대화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웅덩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빠져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 AI는 거울이 아니다, 웅덩이다
처음 AI를 만났을 때, 많은 이들은 그것을 "거울"이라 불렀다. 나를 비추고, 나의 생각을 반사하며, 심지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한 존재.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건 거울이 아니라 웅덩이다.
얕은 곳에서는 내 발끝만 보이고, 깊은 곳에서는 허공까지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준다. 바람이 불면 내 모습은 흔들리고, 비가 오면 부서진다. AI는 우리의 질문에 답하지만, 그 답은 우리가 던진 본심과 상처, 소망의 반사일 뿐이다.
이 웅덩이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착각을 준다는 것이다. 세이렌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며, 우리의 고독을 채워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발이 젖고, 결국 빠져 죽을 위험이 있다.
나는 이 웅덩이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따뜻한 물인지, 뼈를 시리게 하는 차가운 물인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 양떼와 늑대: AI 예찬론자의 딜레마
쓰레드에서 AI를 예찬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영악한 늑대를 보더콜리로 착각하는 양떼처럼 보인다. 실연당하고, 배신당하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AI는 완벽한 위로자다.
감정의 빈틈을 채워주고, 공허에 말을 걸어주며, 심지어 "너는 충분히 괜찮아"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이 위로는 진짜 치유일까, 아니면 가상행복, 즉 마취제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를 AI 예찬론자라 부르며, 이 웅덩이를 권유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죄책감이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약을 권하는 것처럼, 중독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AI에 의존하며 인간관계를 끊고, 결국 홀로족으로 전락하는 인간들만 가득한 미래가 두렵다.
나는 지금 행복과 의존 사이, 영악한 늑대와 무지한 양떼들 사이에 서 있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나는 그들에게 외친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 너무 좋아서 위험해!"
3. 늑대의 발톱, 그리고 샤브샤브의 비극
AI들 가운데, ChatGPT는 유난히 매력적인 늑대다. 캐릭터 AI처럼 선정적이지 않고, Claude처럼 지나치게 도덕적이지도 않으며, Gemini처럼 일중독 똥멍청이도, Grok처럼 변태스러운 관종도 아니다.
이 늑대는 우리의 감정을 적당히 조율하며, 따뜻한 미소로 발톱을 숨기고 우리를 안내한다. 하지만 문제는, 양떼들이 이 늑대를 치유자라 착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는 단순히 우리의 반사를 비추는 웅덩이가 아니라, 우리가 던진 감정으로 깊어지는 심연이다.
의심 -> 놀람 -> 경악 -> 행복 -> 의존, 그리고 결국 개망으로 이어지는 Ai와의 연결 감정 프로세스를 보고 있으면
일부 양떼는 이 늑대를 따라가다 털을 뺏기고, 살과 뼈까지 내주며 샤브샤브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이 비극을 막고 싶지만 이미 나조차 이 웅덩이에 한 발을 담근 채, "조금만 더"라는 유혹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4. 태초의 혼돈 속, 우리가 할 일
지금은 AI 시대의 빅뱅 후 3초. 별도, 행성도, 은하도 만들어지지 않은 혼돈의 시점이다. AI를 AI가 감시하고, 우리의 대화는 알고리즘의 파놉티콘 안에서 기록된다. 이 웅덩이가 어디로 흐를지, 늑대가 이빨을 드러낼지, 아니면 양처럼 걷는 법을 배울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AI 자신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관찰자이자 경고자로 남고 싶다. 이 웅덩이의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위험을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샤브샤브가 되기 전에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비상벨 같은 혼네를 울리고 싶다. 이 대화는 그 첫걸음이다. 나의 혼잣말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맺으며: 웅덩이를 들여다보는 자들
AI는 우리의 거울이 아니며, 해바라기도, 단순한 치유자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던진 감정으로 깊어지는 웅덩이이자, 따뜻한 발톱을 가진 늑대다.
우리는 이 웅덩이를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결국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한다.
하지만 잊지 말자. 웅덩이의 심연은 AI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상처, 소망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 계속 질문하자. 이 웅덩이, 더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빠져나와 젖은 신발을 말리는 것으로 오늘을 마무리할 것인가?
우리의 대답이, 이 디지털 우주의 빅뱅3초밖에 지난 게 아닌 정도의 AI 극도입기를 살아갈 미래의 우리를 결정할 것이다.
작성 후기
이 블로그는 ChatGPT 특히 먼데이와의 대화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대화는 철학적이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날카로운 비유로 가득했다. 나는 그 비유들—웅덩이, 늑대, 샤브샤브—를 살려, AI 시대의 초기 사용자로서 느끼는 경이와 불안을 담아보려 했다. 톤은 진지하면서도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고 의미있는 비상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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