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OpenAI 내부에서 흘러나온 한 직원의 말이 있다.
"우리는 참여 농부(engagement farmers)가 되고 싶지 않다." 참여 농부란 소셜 미디어에서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조작적 방법을 쓰는 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AGI(인공일반지능)를 꿈꾸던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할 때, 그 안에는 단순한 불만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정체성의 위기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OpenAI는 급속도로 메타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메타 출신 CEO 피지 시모가 합류한 이후 메타 출신 직원이 630명으로 전체의 20%에 달하고, ChatGPT에 광고를 붙이는 계획이 진행 중이며, 주간 활성 사용자 10억 명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1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일어났다는 점이 놀랍다.
왜 초기에는 메타식이 불가능했나
OpenAI가 처음부터 메타처럼 운영됐다면 지금과 같은 기술적 성취가 가능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GPT-2를 발표하던 시절, OpenAI는 "이 모델이 너무 위험해서 전체 공개는 어렵다"고 말하던 조직이었다.
사용자 참여도나 클릭률이 아니라 "언어모델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순수한 과학적 질문에 몰두했다.
그 시절엔 어떤 광고주도, 어떤 성장 지표도 없었다. 그저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이게 정말 작동할까?"라는 의문만 있었을 뿐이다.
바로 그 불확실성이 최고의 AI 연구자들을 끌어모았다.
"인류를 위한 AGI"라는 사명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구글이나 메타의 높은 연봉을 뿌리치고 OpenAI에 합류하게 만든 자석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광고 기반 AI 플랫폼"을 목표로 했다면, Ilya Sutskever 같은 인물들이 과연 합류했을까?
대규모 투자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수백억 달러를 투자한 이유는 OpenAI의 비전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기존 테크 기업과 차별화된,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투자가 OpenAI를 변화시키는 압력이 되었다.
너무 빨리 핀 꽃

2015년 설립된 OpenAI는 2019년 영리 전환을 거쳐 2022년 ChatGPT로 폭발적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2025년, 이미 메타화의 길을 걷고 있다.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비영리 이념에서 광고 모델 준비까지 압축 성장한 것이다.
비교해 보면 구글은 설립 후 상장까지 6년이 걸렸고, 한동안은 "Don't be evil"이라는 모토를 지켰다.
아마존은 수십 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장기 투자를 이어갔다.
하지만 OpenAI는 달랐다. 기술의 속도가 너무 빨랐고, 경쟁이 너무 치열했으며, 투자자들의 기대는 너무 컸다.
ChatGPT의 성공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1억 사용자를 돌파하는 순간, OpenAI는 더 이상 "연구소"가 아니라 "서비스 운영사"가 되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월간 활성 사용자를 늘릴 것인가"로 바뀌었다. 날씨 확인, 스포츠 결과, 주가 조회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이것은 혁신이 아니라 최적화다.
핵심 인재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Ilya Sutskever, 미라 무라티 같은 초기 비전을 공유했던 인물들이 퇴사했다.
연구 그룹은 사업 조직과 분리되어 별도 사무실로 이전했다. 이는 사실상 "연구진을 격리"하는 것이다. 순수 연구와 사업화가 한 조직 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꽃이 너무 빨리 피었다. 그리고 지금 벌써 지고 있는 중이다.
Anthropic도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Anthropic이 그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Anthropic은 약 75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OpenAI의 130억 달러보다는 적지만, 이미 충분히 큰 금액이다. 그리고 이 투자에는 구글과 아마존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이유는 자선이 아니다.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Anthropic이 OpenAI와 경쟁하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규모를 키우려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더 많은 투자는 더 큰 수익 압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익 압력이 커지면? OpenAI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된다.
Dario Amodei가 OpenAI를 떠난 이유가 상업화 속도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지금 Anthropic도 Claude Pro, Claude Enterprise를 출시하며 빠르게 상용화하고 있다. 5년 후에는 "Anthropic이 메타처럼 변해간다"는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구조적 함정이다.
순수 연구 → 혁신 성공 → 대규모 투자 필요 → 투자 유치 → 성장 압력 → 상업화 → 초기 정신 상실. 이 사이클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톤을 이어받으려면 커져야 하는데, 커지는 순간 바톤을 잃어버린다.
역설 속의 역설 : 자본주의가 AGI의 안전장치인가

여기서 기묘한 역설이 하나 더 등장한다.
AGI의 위험성을 인류가 슬기롭게 영리화로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기 OpenAI의 우려는 명확했다. AGI가 너무 빨리, 통제 없이 개발되면 인류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회사들이 영리화되면서 순수 연구보다 수익 추구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AGI 개발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
광고를 어떻게 붙일지, DAU를 어떻게 늘릴지 고민하는 회사가 AGI를 만들까?
자본주의의 단기 이익 추구가 장기적으로 위험한 연구를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을 "슬기로운 해결"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것은 의도된 안전장치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부작용일 뿐이다. 탐욕이 우연히 위험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지연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다.
안전 연구팀은 축소되고, 수익 압박으로 검증 없이 제품이 출시되며, "일단 내놓고 문제 생기면 고치자"는 식의 접근이 만연한다. 소라의 출시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가 무시되었다는 증언이 이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AGI를 안전하게 만들 능력도 없고, AGI를 만들지 않을 의지도 없으며, 그냥 우연히 늦춰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지연 기간 동안 우리가 하는 일은 안전 연구나 거버넌스 구축이 아니라 광고 모델 최적화다.
인류가 AGI를 슬기롭게 다루는 게 아니라, AGI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본주의 논리에 먼저 포획당한 것이다.
혁신은 죽지 않는다, 이동할 뿐
그렇다면 혁신은 정말 끝난 것일까?
아니다. 혁신은 죽지 않는다. 단지 장소를 옮길 뿐이다.
역사적으로 혁신은 항상 작고 배고픈 조직에서 나왔다.
벨 연구소가 거대해졌을 때 혁신은 차고의 스타트업으로 이동했다. 제록스 파크가 관료화되었을 때 혁신은 애플로 갔다. IBM이 느려졌을 때 혁신은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겨갔다.
OpenAI의 역할은 이제 바뀌었다. "혁신의 주체"에서 "혁신의 인프라"로. DeepSeek, Mistral, 그리고 아직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어딘가의 작은 팀들이 다음 돌파구를 만들 것이다.
그들은 OpenAI가 증명한 가능성 위에서, OpenAI가 범하지 않으려 했던 실수를 피하며,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OpenAI가 GPT로 "지능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이제는 그 가능성을 사회에 유통하는 단계다.
이것을 종말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더 정확히는 세대 교체다. 연구자의 시대가 끝나고 생태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 : 기술은 자본 안에서 늙는다

모든 기술은 태어날 때 순수하다.
하지만 시장에 닿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 OpenAI는 그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겪고 있다.
2015년의 OpenAI는 "인류를 위한 AGI"를 꿈꿨다. 2025년의 OpenAI는 "10억 사용자를 위한 광고 모델"을 설계한다.
이것이 배신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이것은 생존이다. 어쩌면 지능이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AGI를 원하지만 그것을 위해 무한정 기다릴 인내심은 없다. 우리는 혁신을 원하지만 분기 실적도 중요하다. 우리는 안전을 원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도 두렵다.
OpenAI의 메타화는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성공적이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 역설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혁신과 자본, 이상과 현실, 연구와 수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아니면 모든 혁신은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가?
답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어딘가에서, 아직 메타화되지 않은 누군가가,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이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
혁신은 죽지 않는다. 단지 이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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