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토콜 : 국경 너머의 전략

아일랜드 전력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 : 데이터센터 딜레마

타잔007 2025. 5. 28. 18:19

"데이터센터 천국"의 함정 : 각국이 마주한 빅테크 데이터센터 딜레마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최근 아일랜드가 심각한 전력 위기를 겪고 있다. 2023년 기준 국가 전체 전력의 21%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가정용 전력 소비량(18%)보다 많다. 2025년 1월에는 사상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했고, 전력망은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다. 더블린 지역은 이미 신규 데이터센터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전기요금 폭등이다.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이 2021년 대비 2023년 거의 두 배로 뛰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대량 소비하면서 추가 발전소 건설과 송전망 확충 비용이 고스란히 일반 국민에게 전가된 것이다. 아일랜드 전력당국은 지난해 두 차례나 대규모 정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일랜드는 12.5%의 낮은 법인세율로 구글,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적극 유치했다.

90여 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 중이고, 건설 예정인 것까지 합하면 130개를 넘는다.

AI 붐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2015년 이후 400% 이상 증가했다. 특히 ChatGPT 같은 AI 서비스는 일반 구글 검색보다 1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더 심각한 것은 구조적 문제다. 아일랜드는 섬나라로 유럽 본토와의 전력 연결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연결되지않은 섬인 건 마찬가지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높지만 풍력 의존도가 커서 날씨에 따라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다. 2024년에는 생산된 풍력 전력의 10%가 저장할 곳이 없어 그냥 버려졌다.

세계 각국의 대응: 똑똑한 규제가 답이다

이 문제는 아일랜드만의 것이 아니다.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나라들이 하나둘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모라토리엄과 조건부 재개 싱가포르는 2022년 데이터센터 신규 유치를 전면 중단했다. 작은 섬나라에 너무 많은 데이터센터가 몰리면서 전력망이 버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4년 조건부로 재개했다. 조건은 까다로웠다. 새로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는 자신이 쓰는 만큼의 재생에너지를 직접 확보해야 하고, 에너지 효율을 30% 이상 높여야 한다. 또한 열대 기후에서도 에너지를 적게 쓰는 냉각 기술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덴마크의 폐열 활용 성공 사례 덴마크는 더 창의적인 해법을 찾았다.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버리지 말고 지역난방에 활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코펜하겐 지역의 경우 데이터센터 폐열이 전체 지역난방 수요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버려지던 열에너지를 난방비 절약으로 연결한 일석이조의 정책이다. 동시에 데이터센터에는 전력망 사용료를 별도로 부과해 MW당 연간 1,500만원을 받고 있다.

 

스웨덴의 강력한 규제 스웨덴은 가장 강력한 정책을 썼다. 데이터센터에 주던 세금 혜택을 모두 철회하고,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톤당 15만원 수준의 탄소세를 매기면서 데이터센터들이 스스로 청정에너지를 찾아 나서도록 유도했다. 풍부한 수력발전을 데이터센터에 우선 공급하는 대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네덜란드의 신중한 접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2019년부터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사실상 금지했다. 도시 전력망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기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각국이 공통적으로 채택하는 해법은 '조건부 허용'이다.

데이터센터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되,

①자체 재생에너지 확보

②피크 시간대 전력 사용 제한

③전력망 투자 비용 분담

④폐열 활용 의무화 등의 조건을 건다.

이는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비용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한국의 현주소: 아직은 괜찮지만...

한국은 아직 아일랜드만큼 심각하지 않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전체의 3% 수준이고, 전력 공급 여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경기도, 세종시, 인천 등에 대형 데이터센터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AI 기술 발전으로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2-2027년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 증가 예상치 (출처:가트너)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구조적 취약점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9.6%로 OECD 평균(30%)에 크게 못 미친다. 수도권 전력 자급률은 49%에 불과해 절반 이상을 다른 지역에서 끌어와야 한다. 전기차 보급과 산업 전기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전력 수요 증가 요인이 겹치고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들

아일랜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먼저 선별적 유치가 필요하다.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만 하는 시설이 아니라, 한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AI·클라우드 서비스 중심으로 유치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데이터센터는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자체 전력 확보 의무화도 필요하다. 새로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함께 설치하고, 대용량 배터리(ESS)를 갖춰 전력망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덴마크처럼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폐열을 지역난방이나 온수 공급에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전력요금 체계 개편은 필수다. 현재처럼 언제든 같은 가격에 전기를 쓸 수 있게 하면 안 된다.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는 요금을 높게 부과하고, 여유로운 시간대에는 할인해 주는 시간대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대용량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는 전력망 사용료를 별도로 받는 것도 방법이다.

비상 대응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전력 공급이 부족할 때 데이터센터가 먼저 전력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계약을 맺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비용 분담이다. 데이터센터로 인해 발생하는 송전선로 건설, 변전소 증설 등의 비용을 운영업체가 일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세금 혜택을 주는 대신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자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시대의 필수 인프라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 전력망을 위협하고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일랜드는 이미 늦었다.

데이터센터를 제한하려 해도 기업들이 소송으로 맞서고 있고, 전기요금은 이미 두 배로 뛰었다.

 

한국은 아직 골든타임이다.

아일랜드의 뼈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지금부터 촘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센터를 마냥 거부할 수도 없고, 무조건 받아들일 수도 없다. 경제적 이익은 취하되 사회적 비용은 최소화하는 지혜로운 정책 설계가 필요한 때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몇 년 후 우리도 아일랜드와 같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우리 전력망과 우리 전기 요금을 지킬 방법부터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