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전장 위의 선택 — 퓨리오사의 길은 무모한가?
2025년,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 AI가 Meta(구 Facebook)의 8억 달러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겉보기엔 단순한 M&A 이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그 이상이다.
기술 독립성과 생존 전략, AI 반도체 생태계의 균열과 기회의 분기점이 겹쳐진 사건이다.
퓨리오사는 이번에 기술 중심 스타트업으로서 자존을 선언했다.
메타와의 기술·조직 통합 거부, RNGD 칩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독자적인 성장 전략.
이 선택은 존중할 만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해두자.
1. 이번은 박수, 다음엔 받아라
지금의 선택은 숭고했다.
하지만 다음번 제안이 있다면,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무조건 수락하라.
AI 반도체 시장은 이미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를 중심으로 굳어지고 있다.
훌륭한 칩 하나로 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은 로맨틱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개발자 전환 비용은 너무 크고, 호환성 장벽은 높다.
기술만으로 생존하기엔 AI는 이제 너무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어버렸다.
철학은 중요하지만, 현금 흐름은 더 중요하다.
2. 이왕 한다면, 야수처럼 해라
독립의 길을 택했다면 온 몸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다.
사람도, 자본도, 시간도.
AI 칩 시장은 기술력 하나로 판가름 나는 싸움이 아니다.
추론 단가, 전력 효율, 연산 밀도
이 세 가지에서 명확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성능이 좋은 건 기본이고,
개발자들이 써야 한다.
툴이 붙어야 한다.
생태계가 따라줘야 한다.
그 모든 건 처절하게 성능과 실리를 맞춘 자만이 끌어낼 수 있다.
3.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정치다
요즘 시대엔 기술이 좋아도 관계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정치란, 업계 내에서 우군을 모으고, 동맹을 만들고, 사람들이 너를 써야만 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부든, 대기업이든, 벤더든.
“비엔비디아계 칩”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과 줄을 타야 한다.
기술 주권, 공급망 다변화, AI 특화 인프라—
이런 키워드에 반응하는 집단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라. 특히 한국 정부나 집단과의 밀착은 최우선이다.
사람들이 기술을 고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생태계" 안에서 선택하는 시대다.
4. 정면 승부보다, 특화 시장을 노려라
범용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랑 맞짱 뜨는 건 너무 무모하다.
다만, 아직은 엔비디아가 못 미치는 곳이 있다.
예컨대:
- 자율주행 내 실시간 추론
- 저전력 엣지 디바이스
- 산업용 AI 최적화 연산 등
이런 곳에서는 여전히 특화된 칩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대형 LLM만이 전부가 아니다.
특화 모델들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고성능 범용 가속기보다 '정확히 맞는 칩'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퓨리오사가 생존하려면 그 타겟을 정확히 정하고, 치명적으로 잘해야 한다.
5. 살아남아야 한다. 기술이 말을 하게 하려면
퓨리오사의 결정은 "기술이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느냐"에 대한 선언이었다.
의미 있었다.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세상은 살아남은 기술만 선택한다.
기술만 있고 전략이 없으면 도태되고,
전략만 있고 철학이 없으면 휘청인다.
지금 필요한 건 둘 다다.
적당한 타협, 확실한 우군, 미친 실행력, 명확한 생존 지점.
퓨리오사는 지금 그 갈림길 위에 있다.
기억해라. 기술로 바꾸고 싶다면, 기술과 회사는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이 글이 그들에게 닿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안다.
위대한 일은 언제나 고독한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